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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중 가석방 그리고 법치주의의 품격 [노종언 엔터법정]

가수 김호중이 가석방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대중의 반응은 다시 한번 뜨겁게 달아올랐다. 김호중이 법을 위반했고 대중에게 실망을 안긴 건 사실이다. 그가 지은 죄의 무게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며, 대중의 준엄한 지탄 역시 그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김호중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수없이 고개를 숙여 사과했고, 그가 처한 죄질과 법조계의 통상적인 판례에 비추어 볼 때 실형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오히려 이례적일 만큼 중한 형기를 살았다는 점이다.유사한 사안에서 초범인 피고인이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를 이루어낸 경우,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는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극히 드물다.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다수임에도 불구하고, 김호중에게는 가혹할 만큼 엄격한 법의 잣대가 적용됐다. 이는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공인이라는 무게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한 사법부의 고뇌 어린 결단이었을 것이다. 김호중은 그 엄중한 사법부의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석방이라는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사회로 복귀하는 그를 향해, 여전히 끊이지 않는 마녀사냥식 낙인찍기가 횡행하는 현 상황은 과연 정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우리는 왜 형무소라는 옛 명칭을 버리고 교도소라는 새 이름을 사용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되짚어봐야 한다. 형무소가 단순히 형벌을 집행하는 공간이라는 응징적 의미에 머물러 있었다면, 교도소는 바르게 인도하고 교정하는 공간이라는 목적론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근대 법치주의가 발전하면서 인류가 깨달은 가장 위대한 지혜 중 하나는, 형벌의 목적이 단순한 복수나 영원한 사회적 격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반성하고 죄의 대가를 치른 이에게 다시 한번 사회에서 살아갈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교도소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법치주의의 본질적 가치다.만약 죄를 지은 자가 처벌을 받고 나온 후에도 평생을 사회적 타살에 준하는 조롱과 낙인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우리 사회의 사법 시스템과 교정 제도는 존재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것은 법치주의가 아니라, 감정이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과 다름없다.인류의 역사는 광기와 군중심리가 빚어낸 마녀사냥의 끔찍한 폐해를 목격해 왔다. 이성적인 증거와 법적 절차 대신 대중의 분노와 감정이 재판관이 되던 시절, 수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거나 영혼이 파괴됐다. 현대의 법치주의는 바로 그 야만적인 역사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성찰 위에서 탄생한 인류의 지혜다.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처벌하고, 그 처벌이 끝난 후에는 다시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일련의 약속, 이것이 바로 우리 인류 스스로를 마녀사냥의 광기로부터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가 앞으로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을지, 혹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는 온전히 그의 진정성 있는 행보와 대중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렇기에 적어도 그가 사회적 숨을 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박탈되어서는 안된다. 죄의 대가를 치르고 진정으로 반성한 자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사회가 바로 품격 있는 법치국가다.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2026.07.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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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㊽ 오승환과 ‘라젠카 세이브 어스’, 그리고 창작자를 존중하는 방법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의 ‘등장’은 단순한 선수 교체를 넘어, 그 자체로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승부수입니다.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선동열 선수가 불펜에서 몸을 풀기만 해도 경기장의 공기가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회자됩니다. 이후 ‘대성불패’ 구대성, ‘야생마’ 이상훈, ‘뱀직구’ 임창용, 그리고 ‘법규형’ 김병현으로 이어지는 마무리 투수의 계보는 여전히 야구팬들에게 철벽의 이미지로 남아있습니다.묵직한 강속구, 포수의 미트에 꽂히는 정교한 스트라이크 그리고 ‘경기가 끝났다’는 안도감까지, 독보적인 마무리 투수는 상대에게는 절망을, 홈팬들에게는 짜릿한 쾌감과 편안함을 선사합니다.이 계보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끝판대장’이 바로 오승환입니다. 그의 또 다른 별칭인 ‘돌부처’가 상징하듯,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무표정과 압도적인 돌직구는 그야말로 ‘절대적 강함’을 보여주었으며, 그의 등장곡 ‘라젠카 세이브 어스’(Lazenca, Save Us)는 그 강함을 더욱 극적으로 배가시키는 요소였습니다. 이 곡은 1990년대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이자, 고(故) 신해철이 이끌었던 밴드 넥스트(N.EX.T)의 명곡이기도 합니다.후반부 이닝이 되면 관중은 자연스레 그 순간을 기다리게 됩니다. 웅장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오승환이 출격하고, 호쾌한 돌직구로 세이브를 올린 뒤 경기가 종료. 이 곡의 전주에 울리는 종소리는 마치 마지막 교시의 끝을 알리는 학교의 종소리처럼, ‘오늘 승부의 막이 내린다’는 신호처럼 들립니다. 승리를 염원하는 홈 관중의 간절함과 오승환이 마운드로 걸어 나오는 순간이 묘하게 맞물리면서, 상대 팀의 전의를 꺾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이처럼 등장곡과 입장곡은 선수의 정체성을 청각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특정 선수의 음악이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순간, 팬들은 경기 상황을 이해하고 선수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며 앞으로 펼쳐질 명장면을 예감합니다. 즉 음악이 단순한 배경을 넘어, 선수의 서사를 완성하는 핵심 장치로 기능한 것입니다. ◇ 음악-선수의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힘이 상징적인 등장곡은 오승환 선수가 일본 프로야구(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할 무렵 한바탕 홍역을 치르게 됩니다. 이적 발표 초기, 오승환의 에이전시 측은 현지 상황에 맞춘 곡의 편곡과 개작 계획을 밝혔습니다. 전주의 종소리를 일본 학교의 종소리로 바꾸고, 가사를 ‘오승환 세이브 어스’로 변경하는 등의 구체적인 방안과 함께, 원곡자인 넥스트가 직접 작업에 참여할 것이라는 내용까지 더해지며 팬들의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원작자인 신해철이 직접 X(구 트위터)를 통해 입장을 발표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되었습니다. 신해철은 오승환 선수가 이 곡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기쁜 마음으로 응원하지만, 편곡과 가사 변경, 넥스트의 작업 참여 등에 대해서는 사전에 어떠한 논의도 들은 바가 없다며 당혹감을 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오승환 선수의 선전을 위해 주변은 조용히 하자’라는 의견과 함께 상황을 일단락 지었습니다. 이후 힙합 가수 주석이 오승환을 위한 응원가 ‘OH’를 발표했고, 이 곡이 새로운 등장곡으로 채택되면서 오승환 선수와 ‘라젠카 세이브 어스’의 인연은 중단됩니다. 오승환 선수는 일본을 거쳐 미국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무사히 은퇴까지 완주했습니다. 그 사이 프로야구와 음악 저작권을 둘러싼 환경도 크게 변했습니다. 한때는 야구장에서 대중가요를 응원가나 등장곡으로 개사해 쓰는 일이 자연스러운 관행처럼 여겨졌으나, 법적 분쟁을 거치며 창작자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달라진 것입니다. ◇ 불꽃야구 - 오승환 등장곡의 부활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지난주 공개된 ‘불꽃야구’를 통해 오승환 선수가 다시 마운드에 서게 되었습니다.그 순간 모두의 기억 속에 봉인되어 있던 ‘라젠카 세이브 어스’가 다시금 등장곡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이 역사적인 재회 과정을 저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에서 담당하였습니다.처음 연락을 받고 의뢰할 곡이 무엇인지 물어봤을 때, 곡명을 듣자마자 무심결에 “오승환 선수가 나오나요?”라고 반사적으로 되물었습니다. 오승환의 돌직구를 기억하는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찰나의 반응이었습니다. 이후 고 신해철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회사와 제작사 사이에서 수차례 조율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생전 원작자가 오승환 선수의 곡 사용을 지지했던 사실, 이 음악이 선수 본인에게도 평생의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 그리고 이 곡이 투수 오승환과 함께 다시 울려 퍼진다면 그것을 기억하는 많은 국민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라는 진심을 전했습니다. 다행히 양측의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마침내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방송 이후 SNS와 댓글을 통해 ‘‘라젠카 세이브 어스’의 저작권이 해결되었을까?’라며 궁금해하거나 걱정해 주는 글들을 보았습니다. 참 반가운 변화였습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음악 저작권을 단순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아닌, 콘텐츠의 핵심적인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그동안 수많은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업무를 담당하며 다양한 창작자와 권리자들을 만나왔습니다. 그중에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아티스트들도 상당수였습니다. 이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결국 원칙은 하나로 귀결됩니다. 창작자를 존중하는 태도를 바탕에 두되, 감정은 절제하고 일이 성사되는 것에 집중하며 차분하게 프로세스를 밟아나가는 것입니다.그런 의미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전문가로서의 사명감에 더해, 찬란했던 한 시대를 기억하는 야구팬이자 음악팬으로서의 진심이 함께 녹아든 특별한 케이스였습니다. 오승환 선수가 다시 마운드로 걸어 나오며 종소리가 울렸을 때 그토록 많은 이들이 반가워했던 이유는, 그 음악이 단순한 등장곡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고귀한 창작물이고, 누군가에게는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 그 자체였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찬란한 시대를 복원하는 장치였습니다.이번에 다시 울려 퍼진 그 종소리는 단지 승부의 끝을 알리는 소리가 아니라, 오래된 기억이 '존중의 절차'를 거쳐 마침내 다시 우리 앞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신호입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6.29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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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악마의 편집’에 던지는 사법적 철퇴,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의 필연성 [노종언 엔터법정]

가짜뉴스의 폐해를 막기 위한 이른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이 2026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최근 딥페이크 같은 AI 조작 기술에 대중의 이목이 쏠리고 있지만, 대중문화 현장에서 법률 분쟁을 담당해 온 필자가 보기에 진짜 심각한 병폐는 따로 있다. 바로 조회수를 노린 유튜버들의 ‘악의적인 편집’(악마의 편집)이다. 기술을 이용한 위조는 가짜임이 명백해 단죄하기 쉽지만, 짜깁기 편집은 훨씬 정교하게 대중을 속인다. 인터뷰나 영상의 자극적인 부분만 잘라내 맥락을 바꾸거나, 무관한 내용을 엮어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처럼 만드는 식이다. 이는 법률이 규정하는 ‘조작정보’에 정확히 해당한다. 그동안 일부 유튜버들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벌금을 내더라도 조회수 수익이 더 크다’는 비뚤어진 비즈니스를 지속해 왔고, 기존의 미비한 민사 배상으로는 이를 막지 못했다. 이들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법적 규제는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행정 심의를 통해 신속하게 유통을 차단하는 이번 규제 방식은, 우리 미디어 생태계가 스스로 정화 능력을 잃었다는 냉정한 판단에서 비롯됐다. 무책임한 왜곡 보도로 기업이 문을 닫고 누군가 파멸적인 선택을 해야 했던 비극을 우리는 기억한다. 불행히도 유튜브와 포털 중심의 국내 미디어 생태계는 팩트체크보다 트래픽을 올리기 위한 받아쓰기에 치중해 왔다. 강력한 사법적·행정적 철퇴 없이는 무고한 피해자를 막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이 법안의 가장 큰 명분이다. 물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손해배상의 하한선이 없고 5배라는 상한선만 있어 실질적인 정화 효과가 작을 수 있다는 기술적 한계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런 지적들은 법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짜뉴스로부터 시민을 지키겠다는 법의 취지를 완성하기 위한 생산적인 조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악질적인 유튜버들에게 확실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법의 집행력을 실효성 있게 증명해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은 미디어 생산자에게 직업적 책임을 무겁게 지우고 개인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뚜렷한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정교한 시행령을 통해 제도를 안착시키는 일이다. 권력기관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나 풍자 예술은 규제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하는 세밀한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법원은 중간판결 제도를 적극 활용해 정당한 고발자가 장기 소송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신속히 구제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단순한 차단 위주의 통제에서 벗어나 플랫폼의 시스템적 투명성을 함께 감시하는 모델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용해 이익을 얻는 악의적 편집은 반드시 멈춰야 한다. 이번 법안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공론장을 맑게 만드는 든든한 방패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2026.06.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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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㊼ ‘텍스트힙’ 열풍 이면… AI 무단 학습에 끊기는 ‘지식의 번식력’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텍스트힙’이라는 단어와 함께 책을 읽는 행위가 다시금 ‘멋진 취향’으로 각광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난달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민음사 편집자들의 이야기가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민음사TV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50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최근 공개된 민음사의 매출과 영업이익 성과는 출판계 안팎에 오랜만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출판계 일부의 성과와 이러한 열풍은 분명 의미 있는 신호이지만, 이것이 출판 산업 전체의 전면적인 회복을 뜻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화려한 성과 이면에는 AI시대의 본격적인 도래와 함께 가시화되고 있는 구조적 위기감이 깊게 감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출판은 단순히 종이에 잉크를 묻혀 상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이 아닌, 문명이 스스로를 기록하고 갱신해 나가는 ‘인간적인 마찰’의 과정입니다. 문제는 AI 역시 인간의 창작물을 흡수하며 진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식 접근성의 혁명’이라는 환호성 뒤에는, 인간의 지식 자산을 원료로 성장한 AI가 그 저작권과 창작 생태계를 어떻게 존중하고 지속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습니다.이번 칼럼에서는 오랜 기간 KBS1 라디오 ‘라디오 매거진 위크 앤드’의 ‘일요일은 책과 함께’ 코너를 진행하며 책과 독자 사이의 소통을 이어온 김성신 출판평론가의 인터뷰를 통해, AI 대전환 시대가 마주한 출판 저작권 문제를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 책은 AI의 땔감이 아닌 ‘종자’AI와 출판은 흔히 이질적인 산업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는 첨단 기술의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편집자와 저자, 서점과 종이책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세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AI를 “출판의 진화”라고 정의했습니다. “출판은 퍼블리싱(Publishing)이잖아요, 어떤 지식이나 정보들을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공공의 것, 퍼블릭하게 전환시키는 것, 대중의 것으로 만드는 거죠. 한 문명이 생산한 모든 지식과 정보가 언어로 전환되고, 후대에 이어지도록 가교역할을 하는 것이 출판의 원래 역할이거든요.”지식을 저장하고 재가공해 전달하는 역할은 오랫동안 출판의 고전적 영역이었습니다.하지만 이제 AI는 인간이 입력한 프롬프트를 바탕으로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결과물을 도출하며 출판의 기능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김 평론가는 AI를 출판의 외부에서 출판 생태계를 공격하는 적이 아니라, 출판이 감당하던 고유의 기능을 흡수한 ‘진화형’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진화한 존재가 이전 존재를 대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지만, 그 진화한 존재가 자신을 가능하게 한 토양까지 태워버린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집니다.“공급망과 순환구조가 끊기는 거예요. 사람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고, 이를 통해 부자가 될 수도 있고, 역사에 이름이 남을 수도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이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그 가능성 자체가 아예 막혀버리면 어떤 바보가 그런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겠느냐는 거죠.” 창작의 동기가 통째로 증발해 버리는 문제를 짚던 김 평론가의 비유는 곧 ‘아마존 밀림’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냥 아마존 밀림을 싹 밀어 벌목해 버리면 당장은 불을 땔 수 있어서 따뜻하겠지만, 그 다음은 도대체 어떡할 건가요?”◇ 합리적인 약탈 속 끊어지는 ‘지식의 번식력’김 평론가는 AI 기업의 무단 학습 행태를 설명하며 ‘약탈’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책과 지식을 학습 원료로 삼으면서도 그 대가가 저자와 출판 생태계로 환원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술 활용이 아니라 명백한 약탈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종이책을 썰어서 AI에 집어넣는 행위는, 아무리 합법적으로 돈을 주고 책을 샀다고 하더라도 본질이 다릅니다. 소비자가 읽으라고 판 책이지, AI를 학습시키라고 판 게 아니잖아요.”그가 진정으로 우려한 것은 단순한 ‘보상 누락’을 넘어 ‘지식의 번식력’이 끊기는 문제였습니다.“AI 산업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이 정작 저작권 시장으로 다시 유입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나무를 베어 쓰기만 할 뿐 심지 않는 벌목과 똑같은 거죠. 당장은 자원이 되겠지만, 결국 지식의 재생산은 되지 않을 테니까요.”그러나 김 평론가는 이 ‘약탈’을 단순히 ‘나쁜 일’이라고만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AI 모델 경쟁이 몇 년이 아닌 몇 개월 단위로 벌어지는 상황 속에 무엇보다 빠르게 데이터를 확보하는 속도전이 중요한 기업들에게 ‘합리적 선택지’가 되어버린 서글픈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했습니다.김 평론가는 이에 대한 구조적 대안으로 ‘출판 소버린 AI(Sovereign AI)’를 제안했습니다.“출판 생태계는 고유의 시스템을 유지하되, AI 기업이 책을 학습용으로 활용할 때는 정당한 사용료를 지급하도록 하는 거죠. 그래서 AI 산업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다시 출판계로 흘러 들어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면서도 ‘출판 소버린 AI’ 구상 역시 문제의 완전한 해법은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이를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방어선'이라고 표현한 그는, “지식의 가임(可妊) 기능 자체를 복구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태어난 아이들에게 연금을 주는 일에 더 가깝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담긴 저작물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사유를 낳는 거룩한 ‘종자’입니다. 그 종자를 모두 태워버린 뒤에는, AI 역시 더 이상 배울 수 있는 ‘숲’을 잃게 될지 모릅니다.결국 AI 시대 저작권 논의의 본질은 “기술을 막을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이분법적 선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작물 위에서 성장한 기술이 그 성장의 과실을 다시 인간의 창작 생태계로 어떻게 돌려보낼 것인가에 있습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6.22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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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영 ‘공항 논란’이 초래한 우리 사회의 이면과 상흔 [노종언 엔터법정]

최근 장원영을 둘러싼 김포국제공항 출국 심사 논란은 엔터테인먼트 가십을 넘어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단 3초짜리 악의적 짜깁기 영상에서 시작된 태도 시비는, 급기야 “연예인이라고 신원 확인을 느슨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특혜 의혹으로 번지며 국민신문고 민원 접수와 한국공항공사의 공식 입장 발표로까지 이어졌다.전체 영상이 공개되면서 장원영이 두 손으로 공손히 여권을 건넸고 보안 절차에 성실히 응했다는 진실이 밝혀졌지만, 대중의 분노가 번져나간 속도에 비하면 진화는 너무나 더디었다. 단순한 오해 해프닝으로 넘기기엔 법과 제도의 틈새에서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상흔을 남겼다.심리학에서는 타인의 불행이나 빈틈을 보며 묘한 쾌감을 느끼는 감정을 ‘샤덴프로이데’라고 부른다. 대중은 ‘완벽한 스타’에게 열광하는 동시에, 그 완벽함이 깨지기를 은밀히 바란다.앞뒤 맥락이 잘려 나간 숏폼 영상 속 한순간은 일부 대중에게 “너도 별수 없구나”라는 비뚤어진 위안을 주었다. 복잡한 진실을 확인하기보다 눈앞의 자극적인 단서로 빠르게 판단해 버리는 인류 공통의 ‘인지적 구두쇠’ 성향과,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편향’이 결합한 결과다. 대중은 풀버전 영상이 증명한 진실 대신, ‘오만한 스타’라는 가짜 프레임에 너무나 쉽게 탑승해 버렸다.이번 사건이 일개 연예인의 태도 문제를 넘어 공공기관의 제도 개선 요구로 번진 결정적 계기는 바로 한국 사회의 가장 예민한 역린인 ‘공정성’을 건드렸기 때문이다.“일반인은 마스크와 모자를 다 벗고 엄격하게 심사받는데, 유명 연예인은 대충 통과하느냐”는 의구심은 대중의 불공정 혐오를 자극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작은 특권과 불공정에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악의적인 편집은 스타와 공항 직원의 관계를 ‘갑과 을’로 프레임화했고, 스스로를 감정 노동자인 직원의 위치에 대입한 대중의 분노는 ‘공항 보안’이라는 제도적 민원이라는 거대한 눈덩이가 되었다.이 모든 과정의 배경에는 대중의 관심이 곧 돈이 되는 ‘주목 경제’의 씁쓸한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자극적인 숏폼 영상과 사이버렉카들은 대중의 도파민을 자극해 조회수를 올리고, 이는 곧 막대한 상업적 이익으로 연결된다. 그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장원영이라는 거대한 IP를 활용해 논란을 창조하고, 대중의 분노를 유도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고수익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다.주목할 점은 대중이 이제 사사로운 분노를 표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신문고 민원’이라는 공식적인 행정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상대를 통제하려 든다는 것이다. 일상의 모든 영역을 규칙과 법치, 매뉴얼로 규제하려는 ‘사회의 사법화’ 경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공공의 매뉴얼을 정비하는 계기가 된 것은 다행일지 모르나, 그 과정에서 한 개인의 인격이 난도질당했다면 그것을 정의라 부를 수 없다. 무분별한 마녀사냥의 끝에는 결국 표현의 자유 훼손과 사회적 신뢰 붕괴라는 부메랑이 돌아올 뿐이다.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2026.06.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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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㊻ ‘참교육’이 비춘 거울, 2차적저작물의 변화와 왜곡 사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참교육’이 화제입니다. 배움의 장이자 그 배움이 행해지는 울타리인 ‘학교’는, 시대가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누구나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학생이었던 시절이 존재하며,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관계와 질서, 때로는 폭력과 침묵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군사독재 시절의 야만적이고 위압적인 학교와 그 안에서 벌어지던 폭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또 다른 영화 ‘친구’의 명대사 “아버지 뭐하시노”는 당시 교사와 학생 간의 강한 위계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친구’의 이준석(유오성)은 싸움을 잘하는 학생이었음에도 그저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가는 것으로 침묵의 반항을 할 뿐, 감히 선생님(김광규)에게 손을 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이후 학교폭력은 ‘일진’이라는 집단을 형성하며 또 다른 양상으로 번져갔습니다. 특히 ‘이해찬 세대’로 대변되는 6·7차 교육과정 시기는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학생 체벌 금지 공론화가 맞물리며 교실 안의 갈등이 격화되던 과도기였습니다. 영화 ‘두사부일체’는 이러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하극상을 부리는 학생(강성필)과 이를 힘으로 처단하는 조폭 보스 만학도 계두식(정준호), 그리고 그런 계두식의 뒤통수를 때리며 여전한 교사의 권위를 확인시키는 교사(박준규)의 모습을 오버랩시키며 시대상을 암시합니다.적어도 이 시기까지 학교폭력은 대체로 물리적 공간에서 이루어졌고, 학생과 학생 간의 따돌림이나 괴롭힘이 대다수였습니다. 그러나 드라마 ‘참교육’에서 보이는 학교폭력은 선생님과 학생을 막론하며, 온라인 공간과 여론을 무기로 삼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충격적인 현실을 보여줍니다.극중 한예리(박서윤)는 고등학생 인플루언서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인지도와 파급력을 무기 삼아, 담임교사 고영수(권혁)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허위 영상을 올리며 그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몹니다. 이어 새 담임이 된 정선영(이상희)에게는 ‘2차 가해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신상정보를 유포하며 괴롭히다가, 결국 교육부 산하 기관인 ‘교권보호국’에 의해 ‘참교육’을 당하는 서사가 전개됩니다.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을 쓰지 않더라도 왜곡된 영상과 자극적인 문장, 무분별한 ‘신상 털기’만으로 한 인간을 사회적으로 매장할 수 있다는 실상은 소름 끼치는 충격을 안깁니다. 이처럼 학교폭력은 더 교묘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잔혹한 현실은 우리 사회에 무거운 경각심을 던집니다. 대중의 공분을 자아내며 이러한 현실을 정조준한 ‘참교육’은 2020년 11월부터 현재까지 네이버 웹툰에 연재 중인 채용택(글)·한가람(그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합니다. 매체 특성에 맞게 인물과 사건을 새롭게 재구성했으나, 웹툰을 기반으로 한 만큼 원작과의 비교는 불가피합니다. 특히 캐릭터와 배우 간 ‘싱크로율’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원작의 장면을 얼마나 잘 살렸는지를 두고 대중의 호평과 혹평이 교차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2차적저작물의 요건 : ‘새로운 창작성’의 부가원작을 영상화하려면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수적입니다. 무엇보다 각색이나 영상 제작은 저작재산권 중 ‘2차적저작물작성권’에 동의를 얻어야 하며, 원작자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사전 협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2차적저작물’이란 원작을 번역하거나 각색, 영상 제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이며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되는 저작물입니다. 단순히 형태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원저작물을 기초로 사회 통념상 ‘새로운 저작물’이라고 인식될 정도의 ‘새로운 창작성’이 부가될 것을 요건으로 합니다.제한된 회차에 방대한 서사를 담기 위해서는 사건의 압축과 캐릭터 보정이 필수적입니다. 웹툰에서는 가능하지만 영상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는 장면을 현실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도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창작성이 더해질 때, 드라마는 원작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독자적인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참교육’의 임한림(진기주)은 이러한 ‘새로운 창작성’이 반영된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임한림은 교권보호국의 두 번째 감독관으로, 학창 시절 학교폭력을 당하던 중 나화진(김무열)에게 구출된 인물입니다. 이후 특전사에 입대해 그의 부하로 복무했던 인연으로 교권보호국에 합류하게 된다는 드라마 속 배경은 원작 웹툰의 설정과 몇몇 차이가 있습니다.원작 웹툰 속 임한림은 ‘참교육’ 이전 고등학생 시절을 그린 ‘한림체육관’이라는 웹툰에 먼저 등장했습니다. 여기서 그녀는 아버지와 자신의 이름을 딴 ‘한림체육관’을 운영하는 체육관 사범이자 어릴 적부터 무술을 익힌 고수로, 심지어 나화진과 비등한 무력을 지닌 인물로 설정되었기에 사실상 학교폭력을 당할 캐릭터가 전혀 아닙니다. 일각에서 논란이 되었던 ‘가슴 축소 수술’ 대사 역시 실상은 이 원작의 설정이 이어진 맥락입니다. 따라서 드라마 ‘참교육’에서 그의 과거와 성격이 다르게 묘사된 이유는 본래 원작에 존재했으나 드라마에는 등장하지 않는 ‘구세라’라는 캐릭터의 서사까지 일부 흡수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회차에 걸쳐 캐릭터를 구축하는 웹툰과 달리, 한정된 분량 안에서 빠른 전개를 이끌어가야 하는 드라마의 특성에 맞춰 인물을 입체적으로 압축·보정(재가공)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싱크로율을 넘어, 창조적 변주와 왜곡의 경계에서 물론 각색은 필연적으로 원작을 변형하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변형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바꾸느냐에 있습니다. 2차적저작물은 창작자의 의도와 정서, 세계관과 캐릭터의 맥락이 살아 숨 쉬는 원작을 전제로 하는 만큼, 원작을 훼손하거나 왜곡하기보다 그 고유한 본질 위에서 새로움을 꽃피울 때 비로소 긍정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결국 원작 기반의 드라마를 판단할 때 단순히 ‘싱크로율이 얼마나 높은가’의 질문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원작의 핵심 정서를 얼마나 온전히 살렸는지, 창의적 변주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더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작자의 권리와 새로운 창작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었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학교폭력과 교권 침해는 갈수록 교묘하게 진화하고, 관련 정책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규제와 완화 사이를 갈팡질팡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실효성 있는 대책을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대중이 드라마 ‘참교육’에 열광하는 지점도 바로 이 현실의 제도가 해결하지 못한 답답함을 허구의 서사가 통쾌하게 풀어주기 때문입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하는 방식이 과연 정당한가, 드라마가 복잡한 교육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한 쾌감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도 의미 있지만, 왜 수많은 대중이 이 작품에 공감하고 호응하는지 그 본질을 온전히 설명하기엔 부족합니다. 이러한 한계는 저작권 정책 분야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됩니다. P2P, 메타버스, 숏폼, AI에 이르기까지 콘텐츠의 이용 방식과 플랫폼은 끊임없이 진화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대응해야 할 법적·제도적 쟁점은 날로 쌓여가는데, 정책적 대응은 여전히 차단 위주의 사후약방문식 제자리걸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변화는 필연적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변화의 방향성입니다. 학교폭력이 갈수록 교묘한 방식으로 진화함을 경계해야 하듯, 저작물 이용이 다변화되는 시대일수록 창작의 본질을 지키고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 또한 함께 진화해야 합니다. 콘텐츠 시장은 이미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저작권 정책도 그 속도에 발맞춰, 창조적 ‘변화’와 악의적 ‘왜곡’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다시 세워야 할 때입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6.15 05:50
드라마

[김지욱 저작권썰.zip]㊺ ‘멋진 신세계’ 속 ‘웬 유 위시 어폰 어 스타’로 보는 저작권 보호기간

SBS ‘멋진 신세계’는 조선 시대 희대의 악녀 강희빈의 영혼이 씌인 무명배우 신서리(임지연)와 ‘자본주의의 괴물’이라 불리는 악질 재벌 차세계(허남준)가 펼치는 일촉즉발 로맨스 드라마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방영된 7회 ‘달의 이면’ 에피소드에서는 신서리의 생일을 맞아 깜짝선물로 오르골을 건넨 차세계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손편지에 담긴 그의 진심 어린 고백과 오르골에서 흘러나오는 명곡 ‘웬 유 위시 어폰 어 스타’(When You Wish Upon a Star)가 어우러지며, 두 사람의 로맨스는 한 편의 동화 같은 명장면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장면은 갈팡질팡하던 신서리가 차세계를 향한 마음을 자각하며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위기에 놓인 차세계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다시 한번 배경음악으로 삽입되며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적인 로맨스 국면으로 전환됨을 알렸습니다.‘웬 유 위시 어폰 어 스타’(When You Wish Upon a Star)는 1940년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노키오’의 OST로 세대와 국경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된 곡입니다. 창립자 월트 디즈니가 생존해 있던 1941년 제1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했고, 1950년대부터 디즈니 TV 시리즈의 오프닝으로 쓰이기 시작했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심지어 독재자 히틀러가 1940년 6월 파리 점령 직후 이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렀다는 출처 불명의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합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곡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이 노래의 저작자는 두명입니다. 작곡자는 1969년에 세상을 떠난 리 할린(Leigh Harline)이며, 작사가는 네드 워싱턴 (Ned Washington)입니다. 네드 워싱턴은 작곡가 리 할린이 세상을 떠난 7년 후인 197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아름다운 노래 뒤에 남겨진 이 연도들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닙니다. 왜 뜬금없이 저작자들의 사망 시점을 언급했을까요? 이들이 세상을 떠난 시점은 작품의 저작권 수명, 즉 저작권 보호기간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작자의 사망 시점으로 계산하는 저작권의 보호기간저작자가 생존해 있는 동안 저작권이 유효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저작자가 사망하면 그 사망 연도를 기준으로 법이 정한 일정 기간 저작권이 유지되며, 이 기간이 만료되면 저작권은 완전히 소멸합니다. 만약 저작자가 여러 명일 경우,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저작자의 사망 연도를 기준으로 보호기간을 계산합니다. 이렇게 저작권이 소멸한 저작물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유저작물’, 즉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이 됩니다.우리나라의 경우, 저작재산권은 원칙적으로 저작자가 생존하는 동안과 사망한 후 70년간 보호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공동저작물이라면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저작자의 사망 연도를 기준으로 70년을 계산합니다.여기서 아주 중요한 법적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 ‘사후 70년’ 규정이 모든 과거 저작물에 소급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준은 2013년 7월 1일입니다. 이날을 기준으로 이미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해 버린 작품들은 구제받지 못하고, 아직 50년이 지나지 않았거나 그 이후에 사망한 저작자의 작품에만 70년 보호기간이 적용됩니다.이를 저작자의 사망 연도로 환산하면 1962년 12월 31일과 1963년 1월 1일이 실제 적용 여부를 가르는 명확한 기준점이 됩니다. ·1962년 이전 사망자: 2013년 7월 1일 이전에 이미 사후 50년이 경과했으므로, 70년 연장 혜택을 받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합니다.·1963년 이후 사망자: 2013년 7월 1일 당시에 아직 사후 50년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개정법의 적용을 받아 70년 보호기간을 적용받습니다.◇ 미국의 경우는?현재 미국 역시 우리와 동일하게 ‘저작자 사후 70년’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공동저작물 역시 마지막 생존자의 사망 연도를 기준으로 계산하지만, 세부적인 조건에서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이 기준은 ‘1978년 1월 1일 이후에 창작된 작품’에만 적용됩니다. 또한 ‘업무상 저작물’이나 ‘익명·가명 저작물’의 경우, 저작자 사후가 아니라 최초 공표 후 95년 또는 창작 후 120년 중 먼저 만료되는 기간을 따릅니다. 그렇다면 1978년 이전에 이미 저작권 보호를 받고 있던 과거의 저작물은 과연 어떤 기준으로 계산될까요.과거 1909년 제정된 미국 저작권법 체계에서는 최초 28년 동안만 저작권이 보호됐습니다. 다만 이 기간이 끝나기 전 갱신 신청을 하면 28년이 추가돼 총 56년간 보호받았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저작자의 사망 연도가 아니라, 작품의 공표일이나 등록일 등 ‘저작권이 처음 확보된 시점’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사실입니다. 이후 미국 저작권법은 두 차례 큰 변화를 겪습니다. 우선 1976년 법 개정을 통해 갱신 기간이 47년으로 늘어나면서 최장 75년까지 보호가 가능해 졌습니다. 동시에 1978년 1월 1일 이후 창작물부터는 우리와 유사한 ‘저작자 사후 50년’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도입했습니다.이어 1998년에는 유명 가수이자 하원의원이었던 소니 보노의 이름을 딴 ‘소니보노법’(Sonny Bono Act)이 통과되고, 이로 인해 1978년 이전 저작물의 갱신 기간은 67년으로 연장돼 최장 95년까지 보호받게 됐고, 1978년 이후 창작물 역시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보호기간이 늘어났습니다.결론적으로 미국의 1978년 이전 저작물은 저작자 사망일이 아닌 ‘공표일이나 등록일’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명확한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1978년 이전에 창작됐더라도 당시에 공표되거나 등록되지 않은 작품이라면 별도의 경과 규정을 적용받습니다.)이 복잡한 법을 앞서 소개한 명곡 ‘웬 유 위시 어폰 어 스타’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이 곡은 아주 오래된 노래이지만, 아직 퍼블릭 도메인(공유저작물)이 아닙니다. 가사와 선율이 결합된 온전한 형태로 이 곡을 사용한다면 국가별로 보호기간이 다르게 계산됩니다.·대한민국 기준 (2046년 12월 31일까지 보호):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작사가 네드 워싱턴의 사망 연도(1976년)를 기준으로 ‘사후 70년’이 적용됩니다.·미국 기준 (2035년 12월 31일까지 보호): 1940년에 공표돼 정상적으로 갱신된 ‘1978년 이전 저작물’이므로, 소니보노법에 따라 최초 공표 후 95년이 적용됩니다.만약 가사를 제외하고 오직 ‘멜로디’만 이용하는 경우라면 어떨까요? 적어도 우리나라 기준에서는 1969년에 세상을 떠난 작곡가 리 할린의 사망 연도를 기준으로 보호기간(2039년 말 만료)을 단독 검토해 볼 여지가 생깁니다. ◇ 신서리와 차세계의 멜로디, 그리고 살아있는 저작권 저작권은 기본적으로 속지주의(각국의 법을 따르는 원칙)가 적용됩니다. 드라마 ‘멋진 신세계’가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권 TV쇼 부문에서 4주 연속 톱3을 차지하며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는 만큼, 작품에 흐르는 이 곡 역시 각 국가의 저작권법에 따른 보호기간과 권리행사 방식을 면밀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점은, 앞서 치열하게 계산한 저작권 보호 기간은 주로 '저작재산권'의 존속 기간을 의미합니다. 설령 먼 미래에 보호기간이 끝나 저작재산권이 소멸하더라도, 저작자의 명예를 지키는 ‘저작인격권’은 별개이기 때문에 저작자의 이름을 임의로 바꾸거나 누락해서는 안 됩니다. 저작자 허위 표시나 명예훼손적 변경은 보호기간과 상관없이 언제든 법적·윤리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극중 신서리와 차세계의 사랑의 내러티브를 동화 속 한 장면처럼 극대화한 ‘웬 유 위시 어폰 어 스타’는 이처럼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저작물입니다. 드라마 제작사가 이 음악이 담긴 오르골 실물을 구매했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음악 저작권까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모든 저작권 권리자의 동의가 전제되었기에, 우리는 비로소 ‘멋진 신세계’를 통해 이 아름다운 선율을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래된 명곡이라고 해서 결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오르골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6.08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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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㊹ ‘삐끼삐끼’와 ‘캐치캐치’: 스포츠 내러티브 3.0 시대의 음악 저작권

최근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흥미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포츠와 음악의 결합이 단순히 선수들의 등장곡이나 응원가를 부르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스포츠 현장의 특정 장면이 숏폼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처럼 소비되는가 하면, 반대로 대중음악 콘텐츠가 스포츠 현장과 결합해 새로운 팬덤의 내러티브를 구축하기도 합니다.대표적인 사례가 2024년의 ‘삐끼삐끼’ 열풍입니다. 당시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이주은 치어리더가 응원석에서 화장을 고치다가, ‘삐끼삐끼 아웃송’이 나오자마자 자연스럽게 일어나 춤을 추는 직캠 영상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무심한 듯한 동작과 음악의 묘한 중독성이 결합된 이 영상은 조회 수 1억 뷰와 SNS 팔로워 100만 명 돌파라는 진기록으로 이어졌습니다. 올해 화제가 된 ‘캐치캐치’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웹예능 ‘워크맨’에서 가수 겸 배우 이준이 민소매 의상을 입고 근육질 치어리더로 변신해, 실제 치어리더들과 함께 가수 최예나의 ‘캐치캐치’ 하이라이트 안무를 선보인 현장 직캠이 시초였습니다. 이후 이 영상은 곳곳에서 패러디되며 밈(Meme)으로 번졌고, 관련 유튜브 쇼츠 누적 조회 수는 1000만 뷰를 돌파하며 ‘모든 아이돌을 압도한 전설의 챌린지’라는 반응까지 얻었습니다. ◇ 스포츠에서 엔터로, 엔터에서 스포츠로두 사례는 같은 성공 공식 위에 놓여 있는 듯 보이지만, 그 흐름의 방향은 다릅니다. 구단 측에 따르면 ‘삐끼삐끼 아웃송’은 원곡 리믹스 버전이 틱톡과 유튜브에 등장한 2021년부터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2022년 치어리더팀의 아이디어로 중독성 강한 안무가 더해지며 KIA 타이거즈의 대표 응원가로 채택됐습니다. 즉, 경기장 특유의 퍼포먼스가 팬들의 직캠과 숏폼 알고리즘을 타고 확산되며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처럼 소비된, ‘스포츠에서 엔터로’ 향한 사례입니다.반면 ‘캐치캐치’는 대중음악 콘텐츠가 스포츠 시장을 거쳐 다시 엔터테인먼트 시장으로 연착륙한 사례에 가깝습니다. 가수 최예나는 2026년 3월 ‘캐치캐치’가 수록된 음반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야구공을) 잡을 때마다 내 곡을 듣고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며 WBC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했습니다. 이어 같은 달 27일 KBS2 ‘뮤직뱅크’ 무대에서는 유니폼을 리폼한 의상과 공을 던지는 듯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야구 시즌을 겨냥한 곡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기도 했습니다.‘삐끼삐끼’가 스포츠에서 엔터로 이동했다면, ‘캐치캐치’는 엔터에서 스포츠를 거쳐 다시 엔터로 돌아온 것입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음악이 현장의 장면을 만들고, 그 장면이 팬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이 참여가 다시 플랫폼과 브랜드가 활용할 수 있는 거대한 서사로 확장되는 구조입니다. ◇ 스포츠 내러티브 3.0: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영역오늘날 스포츠는 AI와 빅데이터로 경기의 흐름을 읽고 선수의 기록을 분석하며, 승패의 확률까지 정교하게 예측하는 기술 중심의 산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포츠에는 여전히 첨단 기술로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영역, 곧 예측을 넘어서는 반전과 계산할 수 없는 감정, 그리고 사람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고유한 서사가 있습니다. 결국 결과가 아닌 과정, 기록이 아닌 이야기, 정보가 아닌 감동이 팬들을 움직입니다.경기장의 웅장한 등장곡이 울리는 순간, 팬들은 선수의 등장을 몸으로 먼저 감지합니다. 응원가의 첫 소절이 시작되면 관중석은 하나의 목소리로 연대합니다. 음악이 특정 선수의 등장과 결합하고 팬들의 합창 속에서 반복되면서, 어느새 선수의 정체성과 커리어는 물론 팬들의 기억 일부, 곧 ‘우리의 서사’로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삐끼삐끼 아웃송’ 특유의 비트가 귓가에 흐르면 사람들은 조건반사적으로 그 동작과 KIA 타이거즈를 떠올립니다. 그것은 춤을 보지 않아도 음악이 먼저 장면을 소환하고, 장면을 보지 않아도 리듬이 먼저 기억을 불러내기 때문입니다. 이제 팬들은 같은 음악에 같은 동작을 따라 하고, 같은 장면을 변주하며 스포츠의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냅니다. ‘스포츠 내러티브 3.0’. 경기 결과와 기록 중심의 서사를 넘어 음악과 숏폼, 팬의 참여와 알고리즘이 함께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과연 스포츠의 본질적 가치인 감정과 이야기를 어떻게 발견하고 확산시켜 마케팅 자산으로 연결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과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저작권은 더 이상 경기장 밖의 문제가 아니라, 팬들이 함께 부르고 따라 하며 재창조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적용되는 현실의 질서가 됩니다. 콘텐츠가 광고와 스폰서십, 구단 브랜딩과 플랫폼 유통으로 확장될 때, 음악은 감정의 장치이자 동시에 정당하게 보호받아야 할 권리의 대상이 됩니다. ◇ 지속 가능한 스포츠 마케팅을 위한 저작권스포츠와 저작권은 종종 충돌해왔습니다. 팬들이 아무리 ‘우리의 노래’라고 느낄지라도, 저작권법상 그 노래는 여전히 창작자에게 귀속되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불렀다는 사실이 이용 허락을 대신하거나 권리의 귀속을 바꾸지는 못합니다.허구연 KBO 총재는 ‘2026 스포츠 마케팅 써밋 아카데미’(SMSA)에서 지난 2024년 뉴미디어 중계권 계약 당시, 야구 관련 숏폼 영상을 모든 팬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독점권을 과감히 푼 조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규제를 풀자 영상 콘텐츠가 무수히 재창조되었고, 이는 곧 젊은 층과 여성 팬덤의 폭발적인 유입이라는 거대한 마케팅 자산으로 되돌아왔습니다.그러나 팬들이 콘텐츠를 즐기고 소비할 수 있다는 것과 아무런 권리 검토 없이 누구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의 콘텐츠 안에는 음악의 저작권과 음원의 저작인접권은 물론, 경우에 따라 안무의 창작성 문제까지 얽혀 있습니다. 영상 역시 촬영자와 플랫폼, 구단과 방송권자의 권리뿐만 아니라 출연자의 초상권과 실연권이 복잡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여기에 광고와 스폰서십이 결합하는 순간, 순수한 팬 콘텐츠는 곧바로 상업적 이용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따라서 음원의 권리관계를 합법적으로 해결하고 팬들이 어디까지 재사용할 수 있는지, 숏폼 이용 범위와 광고 활용 가능성을 정리한 구단과 브랜드만이 알고리즘의 파도를 안정적으로 탈 수 있습니다. 어떤 음악을 사용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편곡할 수 있는지, 그리고 스폰서십 연계 방식에 대한 권리 구조가 불명확하다면, 아무리 좋은 장면이 탄생해도 지속 가능한 마케팅 자산으로 키워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스포츠 콘텐츠가 경기장 밖으로 멀리 확산할수록 권리의 경계는 오히려 더 명확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팬들은 안심하고 즐길 수 있고 브랜드는 안정적으로 참여하며, 창작자와 권리자 또한 정당한 존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가 서로의 언어를 공유하여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가는 ‘스포츠 내러티브 3.0 시대’, 팬들이 함께 부르고 따라하며 재창조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저작권’은 이미 경기장 위에서 선수들과 함께 뛰고 있습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6.01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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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 ㊸ 그 순간, 무엇을 부르고 있었나: 엄지영의 애국가 가창 논란 톺아보기

지난 16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프로야구 경기, 이 날 관중석을 가득 메운 야구팬들의 시선은 마운드가 아닌 마이크를 잡은 한 보컬에게 쏠렸습니다. 밴드 큰그림의 보컬 엄지영이 가창한 애국가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것입니다. 이번 논란은 익숙한 애국가 선율 대신, 여러 구간에서 이를 벗어난 과도한 애드리브와 지나치게 화려한 기교를 선보이면서 촉발되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애국가답지 않다", "국가에 대한 모독이다"라는 격앙된 반응과 함께 "애국가는 애국가답게 불러야 한다"는 지적까지, 선을 넘은 재해석을 향한 비판이 전방위적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애국가의 리메이크나 재해석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응원의 의미로 발매된 YB(윤도현 밴드)의 록 버전 애국가는 대중의 큰 호평을 받은 바 있으며, 2012년 프로야구 올스타전 국민의례에서 애국가를 가창한 소향의 무대는 당시는 물론, 이번 사태와 맞물려 최근 다시금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엄지영의 애국가 가창이 유독 거센 논란을 부른 이유는, 이것이 '국민의례'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의식의 본래 취지를 감안할 때, 대중에게는 그녀의 재해석이 '매우 부적절한 가창'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애국가’의 법적 지위와 프로야구에서의 애국가애국가는 이른바 ‘관습상 국가(國歌)’로서 헌법이나 법률에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통령령인 ‘국민의례 규정’ 제4조와 제6조에 따르면, 국민의례 시 애국가는 선 자세로 힘차게 제창하도록 되어 있으며, 특히 ‘곡조를 변경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비록 작곡가 안익태의 친일 행적과 표절 의혹, 그리고 '만주환상곡'과의 연관성 등 역사적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러한 한계와 논란 속에서도 애국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國歌)로서 국민적 인식과 상징성을 유지해 왔습니다. 프로야구에서의 애국가 제창은 일반 식전 공연이 아닌,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단과 관중 모두가 기립하여 엄숙히 임하는 ‘국민의례’의 순간입니다. 실제로 KBO는 리그 규정의 ‘경기 운영 중 선수단 행동 관련 지침’을 통해 경기 개시 직전 애국가가 연주될 때, 선수들과 심판위원은 벤치 앞에 나와 정렬하고 모자를 벗고 왼쪽 가슴에 손을 얹어야 하며, 연주가 종료될 때까지 개인적인 돌출 행동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대중의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먼저 다수의 국민이 관람하는 프로스포츠의 공익성을 고려할 때, 애국심을 고취하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다짐하는 경건한 의식이라는 긍정적인 의견이 있는 반면, 스포츠의 본질적 목적이 상업과 여가, 오락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과거 5공 군사독재 시절의 이른바 ‘3S 정책’과 맞물려 시작된 전체주의적 잔재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공존합니다. ◇ 애국가의 저작권애국가의 작사가로는 좌옹 윤치호(1865~1945)나 도산 안창호(1878~1938) 등 몇몇 인물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편 작곡가는 ‘안익태’로, 그가 1935년 시카고 한인 교회에서 직접 애국가를 연주하며 초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애국가의 멜로디를 발전시켜 완성한 교향곡인 ‘한국환상곡’에도 애국가가 핵심 선율로 포함되었습니다.애국가는 ‘안익태’라는 개인의 창작물이기 때문에 이 역시 창작과 동시에 저작권이 발생합니다. 실제로 그의 유족이 1992년부터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신탁을 통해 연평균 560만 원 가량의 저작권료를 지급받아 왔다는 사실이 보도된 이후, ‘애국가에 저작권료를 내야 하느냐’라는 논란이 불거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2005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80% 이상이 ‘애국가의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답할 만큼 대중의 반발은 상당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안익태 작곡가의 부인 롤리타 안 여사는 2005년 애국가를 한국민에게 무상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후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 정식으로 기증서를 전달함으로써 오랜 저작권 논란은 종식되었습니다.애국가를 단순한 물건이 아닌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투영된 표현물로 바라본다면, 이를 만든 안익태 작곡가 역시 고유한 창작 의도를 지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한 음과 한 소절의 배치, 호흡점의 위치, 곡의 빠르기와 셈여림에 이르기까지 분위기와 의미를 살리기 위한 창작자의 치열한 고민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저작권법은 그런 음악 창작의 특성을 고려하여 저작물을 창작자의 ‘인격’에 준하여 대우하는 ‘저작인격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그 핵심에는 작품의 훼손과 무분별한 변형을 방지하는 ‘동일성유지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동일성 유지권 : 창작자의 의도와 표현 형식 보호 물론 이 사건을 ‘동일성유지권의 침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창작자의 고뇌와 표현 형식을 보호하려는 저작권의 근본 취지에서 바라본다면, 이번 엄지영의 애국가 가창은 분명 짙은 아쉬움을 남깁니다.결국 이번 사태는 논란 이튿날인 17일, 엄지영이 SNS를 통해 사과문을 올리며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녀는 사과문에서 "애국가를 준비하며 생각과 기량이 많이 짧았다"라며 고개를 숙였고, 불쾌감을 느낀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그러나 사과문에서 아쉬웠던 점은, 엄지영이 속한 밴드 '큰그림' 또한 자신들의 창작곡을 발표하는 아티스트라는 점에서 자신의 개성과 표현의 자유를 드러내기에 앞서, 타인의 창작물과 창작자에 대한 존중 또한 중요시 여겨야 했습니다. 그것은 논란의 본질이 결코 가창자의 ‘짧은 기량’의 문제가 아닌, ‘애국가를 그렇게 변주해서 불러도 되는가’라는 인식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논란은 가창자 엄지영의 미숙한 판단이나 실수로만 마무리될 사건은 아닙니다. 프로스포츠 경기 전 애국가 제창이 국민의례의 식순인 이상, 그 무대에 서는 가창자에게는 국민 정서를 헤아려야 할 책임, 즉 ‘그 순간 자신이 무엇을 부르고 있었는지를’ 충분히 헤아려야 할 의무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5.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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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 ㊷ ‘원더풀스’의 ‘Creep’ : 저작권 클리어런스 노트

지난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리미티드 시리즈 ‘원더풀스’(The WONDERfools)는 1999년 종말론이 득세하던 세기말, 우연히 초능력을 얻게 된 해성시의 루저들, 채니와 친구들이 평화를 위협하는 빌런에 맞서 자신과 세상을 바꿔가는 이야기입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유인식 감독과 배우 박은빈, 그리고 최대훈, 임성재가 다시 한번 뭉쳐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이기도 합니다.극중 은채니(박은빈)는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99년 기준 27세로, 선천적 심장 이상으로 인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내일이 없는 끝이 뻔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 당시 세기 말 종말을 외치며 지구가 곧 망하니 심판 전에 영생을 얻으라는 종교인에게 종말 전에 심판을 해주거나 종말을 당길 수 없냐고 윽박지르는 독특한 캐릭터로 극의 포문을 엽니다.‘원더풀스’의 첫 장면에 흐르는 음악은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명곡 ‘크립’(Creep)입니다. 통상 드라마 첫 장면에 맞춰 삽입되는 음악은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분위기, 그리고 극중 인물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인식 감독의 인터뷰 내용에 의하면, ‘크립’은 90년대를 휩쓴 곡으로 1999년 세기말 배경을 즉시 체감시키는 노래이며, ‘I’m a creep / I’m a weirdo / I don’t belong here’의 가사로 대표되는 소외감·아웃사이더 정서는 은채니(박은빈)를 포함한 ‘원더풀스’ 인물들의 정서와도 긴밀히 맞닿아 있습니다. ‘원더풀스’의 음악 저작권 클리어런스 업무는 필자가 운영하는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이 진행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크립’을 작품에 삽입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 협의를 거쳐야 했을 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사실 이 곡은 2019년 JTBC ‘슈퍼밴드’의 커버 음원 발매 당시에도 클리어런스를 진행해 본 경험이 있어, 저작자 정보나 협의 루트 자체는 비교적 익숙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경연을 통해 아일(I'll), 홍진호, 김형우, 하현상이 원곡의 멜로디와 화성, 가사를 바탕으로 새롭게 연주하고 노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즉 원곡의 저작권만 해결하면 되었을 뿐, 라디오헤드의 원반 음원(마스터권)을 사용하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번 ‘원더풀스’에서는 은채니(박은빈)가 재생한 CD플레이어를 통해 전 세계인들이 기억하는 바로 그 라디오헤드의 연주와 목소리가 흘러나와야 했습니다. 따라서 곡 자체에 대한 저작권과 함께 해당 녹음물에 대한 권리, ‘저작인접권(마스터권)’까지 권리 협의 및 사용 승인을 취득해야 했습니다.◇ 악보에서 음반으로, 음악이 기록된 ‘몸’이 바뀌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입니다. 창작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멜로디와 가사, 코드(Chord) 등의 구체적인 음악적 표현은 어딘가에 ‘기록’되어야 비로소 저작물의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녹음 기술이 없던 시절, 음악을 기록하고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종이에 적는 것뿐이었습니다. 당시 음악의 ‘몸’은 곧 ‘악보’였던 셈입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의 자필 악보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높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독일 음악가 루이 슐뢰서(1800~1886)의 회고록에서 베토벤은 “작품의 전체 모습이 머릿속에서 분명해지면, 남는 것은 그것을 악보로 옮겨 적는 일뿐”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베토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악상만으로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악보’라는 일정한 형식을 통해 시각화됨으로써 비로소 보호받을 수 있는 ‘저작물’로 성립되는 셈입니다. 이는 저작물이란 머릿속의 구상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타인이 지각할 수 있도록 외부에 표현된 것이어야 한다는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설명과도 일치합니다. 이처럼 당시 음악의 권리와 거래는 ‘소리’가 아닌 ‘기록된 악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음악이 청각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와 거래는 ‘시각적 기록물’을 매개로 성립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아이러니입니다. 실제로 베토벤이 작품을 완성하면, 출판사는 악보 인쇄·판매권을 베토벤으로부터 양도받아 악보집을 출간했습니다. 베토벤은 대가를 일시에 지급받는 방식으로 원고나 필사본을 넘겼으며, 특정 의뢰자(발주자)가 있는 곡은 그들에게 독점적 우선권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현악 5중주(Op. 29)는 프리스 백작의 의뢰로 작곡되어, 한동안 백작의 단독 권리 아래 묶여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 기록 기술의 발달, 함께 늘어난 권리베토벤 사후 소리를 기록하는 녹음 기술과 재생 장치가 발명되면서, 음악의 ‘몸’은 다시 한번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음악이 악보라는 한계를 넘어 지금처럼 음반과 음원의 형태로 고정·유통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음악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음반사와 음반 제작자가 등장했고, 이들이 음반을 기획하고 제작비를 부담하여 녹음을 진행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에 따라 녹음물 자체에 대한 권리인 ‘마스터권’은 음반사나 음반제작자가 보유하게 됩니다. 오늘날 음악 시장에서 악곡과 가사에 대한 저작권뿐만 아니라, 저작인접권(마스터권)의 중요성이 이토록 대두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이 마스터권이 언제나 최초 제작자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닙니다. 권리의 양도나 매각을 통해 주인이 바뀌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악 저작권 클리어런스는 단순히 법 조문을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누구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원더풀스’에서 ‘크립’을 사용하기 위해서도 이처럼 마스터권을 보유한 실제 권리자를 수소문해야 했습니다. 권리 소유주를 확인한 뒤에는 작품의 성격과 장면의 맥락을 설명하고, 어떤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곡이 노출되는지, 왜 반드시 이 음악이어야만 하는지를 정리해 전달하며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여러 차례의 논의와 수개월에 걸친 검토, 그리고 최종 계약 체결로 이어지는 천신만고 끝에 비로소 ‘크립’은 ‘원더풀스’의 첫 장면을 장식할 수 있었습니다.결과적으로 ‘원더풀스’ 속 ‘크립’은 단순한 삽입곡을 넘어, 작품이 관객에게 건네는 첫인상이자 소외된 이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강렬한 서문이 되었습니다. 악보 위에 적힌 권리와 음반 속에 고정된 권리는 엄연히 다릅니다. 그 차이를 명확히 구별하고 필요한 권리를 끝까지 확보해내는 일. 그것은 한 작품의 시대를 열고, 인물의 정서를 열고, 이야기의 문을 여는 가장 첫 번째 저작권 실무입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5.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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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슈퍼마리오 갤럭시…아버지와 아들이 공유하는 유대의 서사 [노종언의 컬처인컬처]

최근 대중문화 산업에서 돋보이는 현상 중 하나는 극장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흥행과 오프라인 테마파크 ‘슈퍼 닌텐도 월드’의 꾸준한 외연 확장이다. 비디오 게임이라는 태생적 기반을 넘어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는 닌텐도의 행보는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이러한 닌텐도가 스크린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미디어 프랜차이즈로 성공적인 확장을 이룰 수 있었던 핵심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명작 게임 ‘슈퍼마리오 갤럭시’에서부터 입증된 ‘시대를 이어 전승되는 콘텐츠와 스토리의 공유’라는 강력한 무기에서 찾을 수 있다.어린 시절 방구석에서 브라운관TV를 보며 쿠파를 물리치고 피치 공주를 구하던 ‘소년’들은 이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됐다. 그 시절 자신이 느꼈던 가슴 뛰는 모험의 스토리는 이제 조이콘을 쥔 새로운 소년들, 즉 자녀들의 몫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유행하는 오락거리를 넘겨주는 행위가 아니다. 부자가 같은 영웅과 세계관을 매개로 교감하며, 강력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는 과정인 것이다.통계적으로도 비디오 게임 산업 내에서 이처럼 세대를 잇는 경험의 공유는 뚜렷한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그룹 BCG가 발표한 2026년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약 40%와 X세대의 50% 이상이 매주 5시간 이상 게임을 즐기고 있다. 특히 부모 세대의 57%가 자녀에게 비디오 게임을 직접 소개하고 있으며, 부모들의 약 44%는 자녀가 5세가 되기도 전에 비디오 게임 플레이를 함께 시작한다고 답했다.나아가 밀레니얼 부모의 88%는 “자녀와 함께 경험한 영상 속 캐릭터나 게임 관련 상품을 기꺼이 구매할 의향이 높다”고 응답했다. 이는 아버지의 추억이 아들의 새로운 경험과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음을 실질적으로 증명하는 대목이다.이렇게 형성된 가족 간의 공감대는 강력한 비즈니스 파급력으로 직결된다. 극장이나 테마파크에서 자녀와 함께 나눈 감동과 경험은 차세대 게임 콘솔 하드웨어 구매,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부가가치 높은 자사 소프트웨어 타이틀 구매, 그리고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 정기 구독 서비스 가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닌텐도 시네마틱 유니버스(NCU)’라는 조어가 등장할 만큼 닌텐도의 미디어 믹스 전략이 업계의 큰 주목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 닌텐도는 동키콩, 젤다의 전설 등 글로벌 팬들이 사랑하는 핵심 IP들을 점진적으로 스크린과 오프라인 공간에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시간을 뛰어넘어 세대 간의 스토리를 공유하게 만드는 닌텐도의 진화는, 진정한 IP의 생명력이 ‘세대와 세대를 잇는 끈끈한 유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에 깊이 있게 시사하고 있다.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박세연 기자 psyon@edaily.co.kr 2026.05.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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